심연처럼 끝없이 광활한 무의 공간. 어디를 돌아봐도 하얗게 보일 뿐이다.
세계와 세계 사이에 놓여 있는 경계 지대 중에서도 말 그대로 가장자리에 위치한 외곽 변두리 지역이다. 0213의 경우 사후 영혼 상태로 이 지역에 표류하던 것을 경계 지대에 배치된 저승사자 2471이 발견하여 협회로 인계되었다. 0213의 독백에서 '어떻게 오래 방황하다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는 언급을 통해 죽은 뒤의 인간이 저승사자에게 거둬지지 못하고 길을 잃어버릴 경우 도달하게 되는 최종 표류지인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이후 5012가 수행하고 있던 비공개 임무에서 2471이 과거 구 위원회 운영 시기에 SR형을 받고 해당 구역으로 추방되어 실종된 상태이며, 구 위원회만이 알고 있는 모종의 루트를 통해서만 접근 가능한 것으로 확인되어 처분된 저승사자 조사에 대한 진척도에 난항을 겪고 있는 상태이다.
지하세계를 포함한 세계의 모든 기록이 모여 있는 거대한 도서관으로 아주 오래 전에 세워진 건물인 탓에 콘크리트와 세라믹으로 올려진 현대식 빌딩과 달리, 중세시대 특유의 고풍스러운 고딕 양식을 가진 모습이다.
도서관에 수집된 기록들은 원본 그대로 책, 소설, 공문서, 일기, 학술지 등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세계가 돌아가는 이치나 각종 비윤리적인 실험과 관련된 이론은 물론 저승사자에 대한 비밀까지 알려지는 것만으로도 파급력이 상당하기 때문에 금서로 지정된 문헌들이 대부분이다. 혁명 이전에는 구 위원회 산하의 특정 권한이 있는 이들에게만 ID 카드를 발급하여 출입을 통제하고 있었으나, 혁명 이후에는 공공장소로 개방하여 누구든 방문할 수 있도록 개편되었다.
한때 금서로 지정되었던 문헌에 따르면 인간을 저승사자로 만드는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지던 시기에 그들의 영혼과 관련하여 다양한 이론이 탄생하였다. 개중에는 특별한 혼을 결합하여 삶과 죽음 중간에 놓인 존재가 만들어진다는 가설이나 동등하지만 빛과 어둠 - 정 반대의 성질을 지닌 영혼을 서로 교환하게 되었을 경우 저승사자는 불멸에 대한 부분이 점차 소멸되어 인간으로 돌아가게 된다는 내용이 언급되기도 했다.
저승사자가 인간계에서 인간에게 정체를 들키지 않게 하기 위한 환술.
발현한 환영은 인간계에 존재하는 동물의 형상을 하며, 내면 깊은 곳에 잠재된 본능에 따라 어떤 동물이 발현될지는 저승사자마다 천차만별이다. 인간계를 자유롭게 활보할 수 있게 해주는 유용한 기술임에도 한 가지 단점이 있다면 자신이 어떤 동물이 될지 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가끔은 큰 실망감을 안거나 때에 따라서는 가십거리가 될 만큼 유별난 모습으로 발현되기도 한다. 소문에 의하면 민달팽이의 형상을 가진 저승사자도 존재한다고 한다.
해당 동물이 살지 않는 국가에 출현하게 되면 인간계에 불필요한 혼란을 불러올 수 있다. 환영은 본능을 따르는 만큼 저마다 일을 잘 하는 시간대나 계절 및 환경 등 특정 요소가 있는데, 이것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실제 임무에 투입 될 때는 적절한 구역에 배치된다.
두 존재가 영혼을 섞어 완전히 결합하는 행위. 한 번 실행하면 되돌릴 수 없다.
영혼의 연결을 통해 이루어지는 만큼 서로의 유대감이 중요하다. 일반적인 연결과 마찬가지로 결합 도중 상대가 거부하거나 연결이 불안정해지면 영적으로 심각한 부상을 입을 수 있다.
혼은 섬세하기 때문에 어떤 조건에서 어떤 영혼을 결합하느냐에 따라 천차만별인 결과를 불러온다. 게다가 자신의 목숨을 오롯이 상대방의 손에 맡기는 무거운 신뢰가 필요한 일이기 때문에 보통 반려 관계가 아니라면 기피되는 행위이기도 하다. 여기에 대해서는 몇 가지 이론만 존재할 뿐이며, 이조차 한때는 금서로 지정되었기 때문에 영혼 결합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이는 오래된 존재밖에는 없을 것이다. 현재는 '잃어버린 것들의 도서관'을 통해 몇 가지 관련 문헌을 열람할 수 있다.
상대방의 영혼의 상태를 진단하고 문제의 원인을 찾기 위한 전문 기술로 '영혼의 연결' 이라고도 불린다.
상대의 눈을 마주함으로써 강해진 유대감으로 통로를 연결하고, 자신의 혼과 의식을 상대의 내면 속으로 넘겨 일시적으로 정신을 잇는 행위이다. 기본적으로 저승사자의 약점인 영혼병에 대응하기 위해 확립되었으나 저승사자뿐만 아니라 영혼을 가진 인간에게도 사용할 수 있다.
약간의 실수만으로도 목숨에 치명적일 만큼 위험부담이 큰 고난이도 기술이기 때문에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한다. 영혼을 잇는 도중 한 쪽이 심적으로 거부하거나 연결이 불안정해지면 혼의 강도가 약한 쪽은 반작용으로 인해 자아가 붕괴되거나 영혼이 망가져 소멸하기도 한다.
빛의 영역에 있는 인간 영혼과는 달리 저승사자의 영혼은 빛과 어둠의 경계에 놓여있다.
여기서 '어둠'은 영적인 힘을 다루기 위한 불멸적 권능에 가깝다.
인간계에 오래 머물수록 살아있는 존재가 발산하는 생명력에 영향을 받아 저승사자의 영혼은 빛으로 기운다. 반면 인간의 혼을 거둬들일 때 죽음을 두려워하며 발생하는 분노, 슬픔, 후회, 저주 등 부정적인 잔재에 의해 저승사자의 영혼이 혼탁해지는데, 이는 어둠으로 기울게 되는 현상임과 동시에 '오염'이라고 표현한다. 하지만 빛과 어둠의 분포가 고르지 않고 균형이 깨어질 수록 컨디션 난조부터 어지럼증, 간헐적 통증, 심각한 경우 소멸에 이를 수도 있는 무서운 고질병이기도 하다. 이렇게 혼의 균형이 깨지면서 저승사자의 육체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를 '영혼병'이라고 부른다.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는 것은 오로지 저승사자 개인의 역량으로, 미숙한 저승사자들은 죽음 앞에서 살기 위해 저항하는 인간과 오래 대치하는 경우가 많아 어둠이 과도하게 쌓이는 사례가 자주 발생하기도 한다. 특히 인구밀도가 높은 도시는 넘쳐나는 영혼의 수 만큼 다량의 빛이 깔려 있어 완급 조절이 어렵다. 결국 저승사자들도 인간들과 다를 바 없이 하루하루가 생존을 위한 투쟁인 셈이다.
영혼 靈魂 또는 넋 Soul 이라고 부른다.
생물의 본질적인(혹은 중요한) 무언가를 담고 있다고 여겨지는 특정한 개념을 일컫으며, 육체에 갇혀 있는 어떤 존재의 근원이다. 모든 생명체는 영혼을 가지고 있다. 죽음에 다다라 육체와 영혼의 연결이 자연스럽게 끊어질 즈음, 사신은 그 영혼을 거둬 명계로 인도함으로써 생과 사의 순환이 막힘없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다. 사신에게 거둬지지 못한 영혼은 명계로 향하는 길을 잃고 이승을 떠돌기도 하여 살아있는 인간 사회에 혼란을 초래하거나 피해를 끼칠 수 있다. 또한, 이는 곧 순환 부전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세계의 질서가 무너질 위험을 안고 있다. 따라서 삶의 끝에 다다른 영혼에게는 반드시 사신의 인도가 필요하다.
살아있는 존재의 영혼은 마치 투명한 막에 싸인 것처럼 명확한 형태를 이루고 있다. 또한, 단색의 아우라를 가지고 있는 반면, 죽은자의 아우라는 연기처럼 두껍게 퍼져있는 형태로 악취를 풍긴다. 명계와 강하게 연결된 이들은 겉으로는 다양한 색상의 아우라를 보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단일 색상을 갖는다.
인간계의 영혼은 '빛'이라고 부르는 밝은 생명력을 띠고 있다. 이 생명력을 거의 소진할 경우 생명체는 '죽어야 할 운명'에 의해 정해진 방식으로 사망의 계기가 발생한다. 이때 적법한 시기에 맞춰 사신이 대상의 영혼을 앗아가게 되면 육체는 비로소 완전한 죽음을 맞이한다. 인간 영혼은 저마다 타고난 생명력의 농도가 다른데, 생명력이 짙은 특별한 영혼은 사신이 되기에 적합한 대상으로 분류되어 죽어야 할 시기를 임의적으로 앞당기게 된다. 인간들 사이에서는 찬란한 이는 단명할 사주라는 설화로 떠돌기도 한다. 예외적으로 사신의 영혼은 원래 빛의 영역이었던 인간 영혼에 영적인 힘의 근원인 어둠을 주입하여 만들어낸 인공 생명체로, 빛과 어둠 사이 경계에 놓여 균형을 이루고 있다.
빛은 사신이 가지고 있는 불멸성을 침식하는 특성이 있으므로 사신은 인간계에 오래 머물 수 없다. 해당 요소와 관련하여 명계의 고대 연구 자료에 따르면, 특별한 영혼이 헌신을 통해 사신에게 모든 생명력을 넘기거나 그 반대의 경우가 발생했을 경우 급속한 침식작용으로 인해 사신이 불멸적인 힘을 잃고 필멸의 존재로 돌아온다는 이론이 확립되어 있다. 특별한 인간과 사신의 영혼이 동등한 질량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는 등가교환의 법칙도 작용되는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당연하게도 일반적인 빛의 침식은 사신이 완전한 필멸의 영역에 도달하기도 전에 영혼병에 걸리게 할 것이고, 이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소멸하고 말것이다.
혁명 이전, 구 위원회의 운영 하에 비공개로 진행되던 재판.
재판이라고는 하지만 범법을 저지른 저승사자를 대상으로 열리는 징계위원회에 가깝다. 대외적으로는 법적 판결을 위해 형식적인 절차를 진행하는 듯 보이지만 어디까지나 보여주기식 허례허식일 뿐, 비공개 재판에 회부되었을 때는 이미 모든 죄목과 판결이 결정 난 후기 때문에 징계 대상자에게 충분한 소명기회를 제공하지 않는다.
R.A.D의 다양한 부서 중에는 인사팀도 편성되어 있기 때문에 비공개 재판의 존재 여부는 모두에게 알려져 있지만, 실질적인 절차는 훈련사, 다른 저승사자들의 교정을 맡는 고위 저승사자, 그 외 상급자들만이 알고 있었다. 또한, 혁명 이전에는 공개재판에 회부된 저승사자가 처벌받는 경우 무조건적으로 '소멸'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실제로는 판결의 종류에 따라 소멸되지 않고 초기화되어 가동중인 저승사자들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판결의 종류는 크게 세 분류로 나뉘어 SY, SR, SB 형이 존재한다.
조직의 시스템에 여전히 유용하다고 판단되는 경우.
기억을 초기화 시킨 뒤, 기존에 소속되어 있던 기지와 멀리 떨어진 다른 기지에 배치하여 재가동한다.
가장 흔한 유형의 판결이다.
이들에 대한 자료는 처벌 이전과 처벌 후 경과까지 모두 공식적인 문서로 정리되어 있어 추적이 쉬운 편이다.
조직 시스템에 아직 유용하지만 죄목이 무겁다고 판단되는 경우.
기억을 초기화시킨 뒤, R.A.D 소속이 아닌 외곽 구역으로 좌천시키는 SY형 보다 처벌의 수위가 높은 형이다.
SR형 판결을 받은 저승사자들은 구 위원회의 의원들로부터 원한을 산 이들로 여겨진다.
가장 희귀한 유형의 판결이다.
이들에 대해 정리된 공식 문서가 존재하지만, 기밀사항으로 분류되어 현재 위치는 'Voided'와 같이 구 위원회 멤버만이 알고 있는 정보로 암호화된 상태다. 현재는 명계의 외진 변두리 구역으로 좌천당한 것으로 추측 중이며, 위치를 특정할 수 있는 단서를 비공식적으로 추적하고 있다.
완전한 폐기.
영혼째로 소멸하여 존재 자체가 말소되는 유형이다.
2미터가 조금 넘는 긴 대낫의 형태를 하고 있다. '낫' 혹은 '사이드'라고 부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사신이 탄생할 때 사신 영혼의 일부로 만들어지므로 모든 영혼에 물리력을 행사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사신이 사신의 낫에 베이게 되면 그 상처는 인간의 회복력과 같은 속도로 치유된다. 이 특수성 때문에 사신들 사이에서는 법적으로도 암묵적으로도 사이드를 사용해 다른 사신을 공격하는 것은 엄격히 금지되어 있다.
저승사자, 사신, 죽음의 하수인.
죽은 인간들의 영혼을 거둬들여 영혼이 안식을 취하거나 내세로 가기 위한 준비를 할 수 있도록 사후세계로 인도하는 사명을 위해 창조된 불멸의 종족. 생명 순환의 법칙을 유지하는 전문적인 직업을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인간의 영혼은 수 없이 많고 순환하기 위한 죽음은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기에 그들은 항상 바삐 움직인다.
영혼을 다룬다는 직업 특성상 저승사자들은 영혼의 실체를 눈으로 보고 멀리 있는 대상도 감지해낼 수 있는 능력이 있을 뿐만 아니라, 영혼에 대한 직접적인 간섭이 가능하기도 하다.
모든 저승사자들은 저승사자 협회 지구 Reaper Association District (약칭 R.A.D) 라고 부르는 전문 단체에 속해 있다. 오직 자연의 섭리를 위해 대가 없이 봉사한다는 헌신을 기반으로한 전문적인 비영리기업단체임에 근간을 두면서도, 빠르고 효율적인 업무 진행을 위해 대규모 군대와 유사한 서열 구조와 엄격한 업무 체계를 갖는다. 과거에는 일반적인 이름을 짓거나 부르는 행위는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었으며 식별번호로 호명되었다. 또한, 개인적인 감정이나 의견을 표출하는 것은 징계사유에 해당할 정도로 강한 통제성을 보였지만, 현대에 와서는 혁명의 영향으로 인해 인간식 이름을 짓거나 부르는 것은 자연스러운 욕구이자 자아실현을 위한 원초적 행위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혁명 이전부터 활동하던 저승사자들 중에서는 아직도 이름을 짓지 않고 자신의 식별번호에 정체성을 부여하며 자부심을 느끼는 개체가 남아있기도 하다. 과거 세뇌에 가까운 탄압의 여파로 그들 사회 내부에서는 아직도 자신의 사명을 다하지 못하는 것을 불명예로 여기는 풍조가 남아있다.
모든 저승사자들은 과거에 인간이었으며, 저승사자가 되기에 적합한 영혼을 선별하여 저승사자로 재창조하는 과정을 통해 탄생한다. 늙거나 병에 걸리지 않고, 물리적인 부상을 입어도 눈 깜짝할 새 상처가 사라지는 신묘한 현상을 보여준다. 혁명 전에는 이러한 사실들이 기밀로 분류되어 구 이사회를 포함한 소수의 간부들만이 인지하고 있던 정보였기 때문에 과거 저승사자들은 스스로를 인간과는 다른 상위의 존재로 여긴 적도 있었다. 혁명을 통해 법이 개편되면서 무분별한 저승사자 창조 구조를 철폐하고, 저승사자가 되기에 적합한 대상의 동의를 얻어 저승사자 창조를 진행하고 있다. 혁명의 여파와 변화한 절차에 의해 저승사자들의 숫자는 급격히 줄어들었다. 멸종에 가까운 인구수에 거둬지지 못한 영혼들은 세계의 틈새로 사라지고 있는 추세다.
두드러지는 불멸성에도 그들은 신이 아니기 때문에 약점이 있는데, 동족인 다른 저승사자의 낫에 베이는 것과 영혼병에 걸리는 것이다. 두 가지 사례 모두 저승사자의 육체와 영혼에 심각한 부상을 입히거나 심한 경우 소멸에 이를 수도 있기 때문에 저승사자 창조 기술에는 아직 개선되지 않은 결함도 있으며, 그들이 완전한 불멸자가 아니라는 것을 입증한다. 당연하게도 구 이사회에게는 자신들이 쉽게 다룰 수 있는 꼭두각시를 원했으므로 일부러 저승사자들의 결함을 보완할 방법을 마련하지 않은 까닭이다.
저승사자들은 깨어난 직후 바로 현장에 투입되지 않고 적절한 훈련을 거쳐 환영술, 비행, 무기를 다루는 법 등 영혼을 거두는 데에 필요한 기술을 배우게 된다. 최종적으로 임무를 수행할 자격이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 정식 저승사자로서 공식적인 활동을 시작할 수 있다.
혁명 전에는 전문 훈련사가 50인 이상의 훈련생을 담당하여 교육했지만 자격 미달은 폐기 절차로 이어진다는 비인도적인 시스템이었다. 현재는 선임 저승사자를 팀장으로 세워 신입이나 경험이 적은 저승사자를 붙이는 도제식으로 개편되면서, 2인 이상의 소규모 그룹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이렇게 짜여진 팀은 정식 저승사자로 인정받은 후에도 호흡이 맞는 한 팀으로써 활동하게 된다. 또한, 과거 신입 훈련에 종사하던 훈련사들은 현재는 관련 업무에 투입되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