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람 전 스포일러 주의!
해당 게시글은 비주얼노벨 게임 [A Date with Death] 기반의 드림 설정을 챕터 형식으로 정리한 게시물입니다.
[A Date with Death] 및 [A Date with Death 2:REMNANTS (DEMO)] 의 모든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으며, 개인 해석 및 OC 설정 빌드로 인해 공식 설정과는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열람 전 스포일러 주의!
해당 게시글은 비주얼노벨 게임 [A Date with Death] 기반의 드림 설정을 챕터 형식으로 정리한 게시물입니다.
[A Date with Death] 및 [A Date with Death 2:REMNANTS (DEMO)] 의 모든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으며, 개인 해석 및 OC 설정 빌드로 인해 공식 설정과는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천계와 인간계, 그 아래에 위치한 명계.
명계의 존재들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인간들로 인해 생명 순환의 섭리를 유지하는 것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게 되자 자신들을 대신해 일할 저승사자 즉, 사신 死神 이라고 부르는 존재를 새롭게 창조해냈다.
사신은 죽은 인간들의 영혼을 거둬들여 영혼이 안식을 취하거나 내세로 가기 위한 준비를 할 수 있도록 명계로 인도하는 사명을 목적으로 창조된 불멸의 종족이며, 생명 순환의 법칙을 유지하는 전문적인 직업을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인간의 영혼은 수 없이 많고 순환하기 위한 죽음은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기에 그들은 항상 바삐 움직인다.
그러나 명계의 존재들에게 사신은 어디까지나 '편리한 수단'에 불과할 뿐. 오직 그들에게 주어진 영원한 사명, 세계의 섭리에 대한 봉사만이 자신의 가치를 드높이고 명예를 밝히는 길이다. 그렇다면 그 중에서 가장 궂은 일을 떠맡은 사신은 얼마나 불합리적일까?
이것은 어려서부터 가장 높은 자리에 오른 사신과 그보다 어린, 갓 태어난 사신의 이야기다.
비가 내리는 늦은 밤. 0429는 5번 기지에 방문하였으나 길을 잃고 말았다. 모든 기지의 지리를 꿰고 있었지만 단 한 가지, 훈련소 건물은 근처에도 얼씬거리지 않았기 때문에 내부가 도통 어떻게 생겨먹었는지를 모른다는 것이 흠이다. 더군다나 효율을 위해 각종 교육 시설과 훈련생 관리를 위한 데이터 센터를 병합시킨 것도 모자라 한 부지에 기숙사까지 전부 몰아넣었으니, 일반적인 건물보다 내부 구조가 상당히 복잡했다. 빙빙 꼬인 길에 훈련소를 사용하는 인원은 끽해봐야 거기서 거기. 그녀에게는 10년 전 훈련생 시절일 때나 잠깐 지내던 임시 거처일 뿐으로 이마저도 그녀가 떠난 뒤에는 몇 차례 구조조정을 통해 지금은 기억과 닮은 구석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었다. 0429는 비가 그칠 때까지 근처에 있는 건물에 잠시 쉬어가기로 결정하였고, 그곳에서 한 훈련생과 우연히 만나게 된다.
사신으로서 깨어난지 얼마 되지 않았던 신입 훈련생 5012는 자신에게 학습과 사명을 강요하는 이들에게 한창 불만을 가질 시기였다. 그는 자신의 가슴께에도 못 미치는 작은 여자를 보고 무시하는 듯한 태도로 반응했다. 정확히는 그녀가 동급생이 아니라 자신보다 나이 많은 존재라는 것을 인지한 순간부터 거부감을 드러냈다. 이는 하극상에 예민한 0429를 단단히 자극하는 모양새였다. 때마침 그의 화려한 외모가 그녀의 관심을 끌었다. 저와 같은 검은 머리칼에 짙은 보랏빛 색채를 가졌으며 하얀 새치가 군데군데 내려앉은 - 양쪽 어깨로 가지런히 넘겨 정돈한 긴 중단발 머리, 날카롭게 올라간 눈 밑의 눈물점과 긴 속눈썹, 굳게 일자로 닫힌 고집스러운 입술, 상의 겉옷은 어디론가 내버린 채 훤히 드러내고 있는 훈련복 내의 속 탄탄한 몸선. 퍽 그녀의 인물 취향답게 생겨서 허우대는 봐줄만 했다. 하지만 이는 곧 5012의 인생에서 지독한 행운이자 최악의 불운을 가져오게 된다.
원래 0429는 자신보다 한참 모자란 어린이를 돌보는 선생 노릇을 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하물며 그것이 고작 10년 차이만 나는 제 또래의 존재라면 더더욱. 대단하신 위원회 분들께서 태어난지 고작 5년만에 가장 높은 직위에 오른 '최연소 베테랑'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으면 조직을 위해 재능기부를 해야 할 것 아니냐며 쪼아대는 통에 반항심이 들었던 것이다. 물론 그녀는 각자도생이 불변의 진리인 명계에서 '명계 사람답게' 행동하고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극성 개인주의자였으므로 누군가를 가르치는 행위는 적성에 맞지 않았다는 점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언가를 키워야 한다면, 그녀는 갓 깨어나 비틀거리는 햇사슴이 아니라 피 냄새를 맡고 이빨을 드러내는 어린 맹수를 필요로 했다. 명계는 굽혀지지 않는 불량품을 싫어하기 때문에 눈 앞의 남자도 이대로라면 언젠가는 분명히 바스라질 것이다. 이때 잘 길들여 놓아야 뒤탈 없는 완벽한 개가 될 테지.
0429는 보기 드문 불량스러운 태도를 일단 참아주기로 했다. 명계에서 가장 유명한 사신을 모를 수 있다. 제아무리 최연소 베테랑에 사신보다 더 사신 같은 존재라며 떠들어댄다고 한들 그녀에 대한 진실은 베일에 싸여 있었고, 그녀가 짧지만 긴 세월을 사신으로 살아오며 세운 장대한 업적들을 특별히 교육받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5012에게 길 안내를 요구했으나 "내가 왜 그래야 합니까?"라는 질문으로 답변 받은 이후 0429의 인내심은 얼마 못 가 바닥나고 말았다. 그와의 만남부터 대화까지 이어진 종합적인 평가는 이러했다.
싸가지 없는 새끼.
지금보다 더 확실한 교육이 필요하다.
더는 길 안내가 필요 없어진 0429는 싸늘해진 표정으로 다음을 기약하며 물러났다.
사신번호 0429 - 그녀는 희소성 있는 영혼의 특성과 본인의 실력을 입증하여 예외적인 존재로 인정받았으므로 그들의 규칙에 구애받지 않았으니, 갓 입소한 어린 짐승새끼 하나를 다루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게다가 이러한 결정에 당사자의 의사는 조금도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에 모든 것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고작 그녀의 명령 한마디로 5012는 기존 트레이너의 명단에서 퇴출되어 5번 기지 센터 건물의 최상층에 위치한 그녀의 옆방으로 거처를 옮길 수밖에 없게 되었다.
0429와 재회하게 된 5012는 눈을 뜬 이래로 가장 끔찍한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그가 적대감을 드러냈던 상대는 생각보다 훨씬 더 드높은 존재였고 그녀의 가르침은 기존의 훈련사와 비슷하면서도 전혀 다른 성질을 갖고 있었는데, 그저 '지옥'이라는 말이 떠오를 정도로 손속에 사정이 없었다. 자신보다 작고 약해보이는 존재에게 권위적으로 제압당하는 동시에 꼼짝없이 스승으로 모셔야 한다는 사실은 그가 생전 처음 겪어보는 종류의 부당함이었을 것이다. 무서울정도로 완벽함을 요구하며, 그 기준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그녀는 도통 말이 통하지 않는 기계와도 같았다.
못하면 할 때까지, 실수하면 처음부터 다시. 0429는 자신의 수중에 들어온 짐승을 기분에 따라 다뤘다. 기분이 좋을 때는 관대한 칭찬과 보상을 주거나 때로는 기분이 나쁘다는 이유로 그의 훈련복이 피로 흠뻑 젖을 때까지 폭력을 휘두른 적도 있었다. 사신은 늙거나 병에 걸리거나 물리적인 충격으로도 죽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시간은 영원에 가깝도록 넘치는 자원이었고 그녀는 인간 시절 암흑가에 거둬졌던 존재인 만큼 사람이 언제 무너지고 언제 구제받는지를 잘 알았다. 지속적인 고통은 사람을 정신적으로 예민하고 지치게 만든다. 실제로도 고통에 길들여진 5012는 처음에 비해 많이 얌전해진 모습을 보였다. 가끔 말꼬리를 잡거나 마지못해 하는 모습을 보여도 그녀에게 정면으로 맞서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대로 자존심을 내려놓기엔 그가 겪은 부당함과 치욕스러움은 결코 작지 않다. 5012는 기필코 눈 앞의 여자를 뛰어넘고 그간 당해왔던 모든 만행을 되갚아주리라 다짐했다.
그렇게 서로가 서로에게 익숙해질 무렵 0429는 돌연 길고 고된 훈련의 종료를 선언했다. 5012가 그녀의 기준에 부합하기까지 자그마치 50년의 세월이 흐른 뒤였다. 0429는 자신이 아는 지식을 동원해 상당한 기술을 5012에게 전수했고, 예상 외로 그녀는 오직 그를 위한 전속 훈련사라는 본분에 충실했다. 5012는 매번 0429의 뒤를 따르기 급급했으나, 그것은 그저 그녀가 벼려낸 세월이 그보다는 길었기 때문에 따라잡지 못했을 뿐. 객관적으로 봤을 때 그는 사신으로서 재능이 무척이나 뛰어난 인재였던 것이다.
한편 5012는 0429의 결정을 따를 수 없었다. 아직도 그녀로부터 배워야 할 점은 산더미만큼 쌓여 있는데 무엇을 끝낸단 말인가? 이대로 이별을 고하는 것은 제자의 성장을 두려워하는 비겁자의 행위다. 그녀는 책임지고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토해내야 마땅했다. 그것이 스승된 도리여야 한다. 5012는 그렇게 결론짓고 항의하려 했지만 자신이 방금 무엇을 생각한 것인지 깨닫고는 도망치듯 0429의 곁에서 떠나버렸다.
의식을 되찾은 5012는 시야에 들어오는 익숙한 책상과 의자, 현관문을 바라보며 빠르게 상황 파악을 시작했다. 혼의 균형이 무너져 쓰러지고 난 뒤 정신을 잃었던 것 같다. 그대로 소멸하는 줄로만 알았는데, 끓는 듯한 고통은커녕 영혼 한구석 어딘가 기묘한 포만감과 함께 기분 좋은 서늘함이 그의 모든 부분을 어루만지는 것 같았다. 머리를 흔들어 아직 몽롱한 정신을 털어낸 그는 이번에는 이상한 위화감을 느꼈다. 아무것도 만지고 있지 않은데 마치 이불처럼 포근한 섬유의 감촉이 그의 신경을 자극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그가 전혀 알지 못했던 빛바랜 장면이 뇌리를 스쳐 지나가며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로제타.
들리지만 들리지 않는 듯 희미했다. 당연하게도 그가 전혀 들어본 적 없는 목소리다. 성별조차 가늠할 수 없었다. 5012는 등 뒤로 들려오는 얕은 숨소리에 문득 고개를 돌려 침대 위쪽을 바라보았다. 아주 익숙한 얼굴, 그의 스승이 보였다. 본능적으로 그녀가 자신의 목숨을 구했다는 것쯤은 금방 알 수 있었다. 예상 범위 내에서 모든 퍼즐이 맞춰진다. 5012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몸을 일으켰다. 0429를 내려다 보는 시선에는 복잡함이 가득했다. 그녀가 굳이 자신의 영혼을 제물 삼아 그의 소멸을 막을 이유는 없었다. 혼을 공유한다는 것은 목숨을 공유한다는 것, 어느 한쪽의 고통과 상처까지도 똑같이 나눈다는 것이다. 5012의 기척에 잠에서 깬 0429는 인생을 송두리째 뒤엎는 일을 벌인 것치고는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했다. 영혼 상태를 진단하기 위한 일반적인 연결에서 생각이 들리고 감각이 이어지는 것은 으레 있는 일이지만, 고작 영혼이 섞인 것 가지고 생각과 감각뿐만 아니라 기억과 감정까지 이어지게 될 줄은 몰랐다고. 늘어지게 하품하며 말하는 그녀의 모습은 공기보다도 한없이 가벼워 보였다.
0429가 기억하는 몇천 년의 지식과 수많은 고서를 뒤져 찾아낸 문헌에 의하면 그들의 연결은 해결할 수 없는 영구적인 부작용이었다. 게다가 의도치 않게 0429의 기억을 엿보게 된 5012는 그녀가 철저하게 숨겨왔던 과거를 마주하게 되었다. 감추고 있던 비밀이 들통난 0429에게는 상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이었다. 귀족 영애의 탈을 쓴 암흑가 인간의 기억. 공허한 어둠. 암살자의 자아로 꿋꿋하게 불멸의 삶을 버텨내며 우수한 성적을 거둬 제 자리를 굳히던, 위원회의 유일한 영혼 표본. 사신에게 허락되지 않는 모든 비밀에 인접해 있는 그녀는 본래 신분을 숨기고 다른 사신들 틈에 섞여 세계 단위의 대역 죄인을 처단하는 단죄자였다. 그리고 사신에 대한 진실과 그녀의 진짜 이름은 덤으로. 부수적으로 일어나는 바람직하지 못한 일 - 영혼 결합의 부작용이란 그런 것이다. 하지만 이미 목숨까지 나눈 마당에 제 까짓 게 뭘 어쩌겠단 말인가? 사신의 법도를 아무리 잘 지킨다고 한들 함께 죽자고 달려드는 꼴이니, 어딘가에 밀고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세월에 마모되어 대부분의 것을 사소한 해프닝쯤으로 여기는 그녀는 입만 아프게 하나하나 설명할 필요가 없어졌다며 좋아했다. 사신은 본래 인간이었다. 그리고 인간의 기억을 가진 로제타 플로센시아... 5012는 드물게 사신의 규칙을 깨고 침묵을 택했다.
조절할 수 없는 감정, 생각, 감각, 기억은 가히 재난에 가까웠다. 시도 때도 없이 흘러드는 상대의 모든 것이 두 사람을 혼란스럽게 했다. 나의 것이 아님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마치 원래부터 가지고 있었던 일부분 같았다. 한 가지 다행인 점은 그들이 혼의 영역에서만큼은 노련한 사신이었다는 것이다. 미칠 것 같은 가려움도 시간이 지나면 무감각해지는 것처럼, 그들은 서로에 대한 연결을 최대한 자각하지 않고 그저 긴 시간 끝에 무뎌지는 방향을 선택했다.
서로의 감각에 익숙해질 무렵 5012는 아직도 0429에게 해소되지 않은 앙금이 남아있긴 했지만 그녀의 가르침이 곧 뼈와 살을 이루는 양분이 되었음을 깨달았다. 그가 정식 사신으로 활동하며 입지를 다지는 동안 마주한 그녀의 발자취는 공교롭게도 상상 이상으로 거대했다. 그녀는 명계의 질서를 위해 그 어떤 사신들보다도 궂은 일을 도맡아 봉사해왔다. 그야말로 높은 위치에 올라선 책임자다운 행보다. 그녀의 존재가 더 이상 혐오스럽게만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스승의 그늘 아래서 도망치려 했던 자신이 어리석었다. 그는 사신의 우상인 인물을 닮을 수 있음이 자랑스러웠다. 대가 없이 목숨을 구제받은 이상 그 헌신에 보답해야만 한다. 5012는 고민 끝에 그녀에게 페어 활동을 제안했다.
억 단위의 반복자들이 매사 끊임없이 죽음과 탄생으로 순환하지만 시간을 모두를 기다려주지 않고, 영혼을 거둬들이는 사신의 수는 턱없이 부족하다. 협회에서는 조금이라도 더 높은 업무 효율을 끌어낼 수 있도록 2인 1조 팀 결성을 장려하는 페어 제도의 활성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었으나, 늘 그렇듯 각자도생이 불변의 진리인 명계에서는 그다지 관심받지 못하는 정책 중 하나였다. 게다가 페어로서 함께 행동한다는 것 자체가 협회가 제시하는 혜택이었으므로 개인주의적인 사신에게는 별다른 이득이 없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어쨌든 그들은 서로의 비밀을 떠안고 있었다. 보다 쉬운 탁상공론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손해를 보는 구석은 없었다. 오히려 더 긴밀한 행위를 가능케 할 접점과 명분이 늘어난 셈이다. 모처럼 품을 들여 제 입맛대로 키워낸 충견을 다른 누군가에게 빼앗기 싫었던 0429는 일말의 고민도 없이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페어를 맺었음에도 상충하는 성격으로 인한 마찰과 작은 다툼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 부분은 시간이 더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0429에 의해 삶의 이유를 찾을 수 있었던 5012는 그녀에게 가장 가까이 닿아 있는 것이 자신뿐이라는 사실에 대해 퍽 만족스러운 입장이었다. 0429 또한 자신의 것에 대한 독점욕을 드러내며 그의 고립을 바라고 있었기 때문에 결론적으로는 상호 이해가 맞아떨어진 셈이니, 이만하면 나름 해피엔딩인 것이다.
Humans spread like wildfire around the realm. Struggles have turned to impossibility,
and there are no longer enough of us to deal with them. I have been tasked with finding a solution.
인간들이 이 영역의 전역으로 들불처럼 퍼져나간다. 문제는 이제 더 이상 해결 가능한 수준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는 더 이상 이 문제를 감당할 수 없게 되었다. 나는 해결책을 찾는 임무를 맡았다.
The answer, I believe, lies in the problem.
Humans. Their souls.
그 답은, 아마도 문제 자체에 있을 것이다.
인간... 그들의 영혼에.
But what if, instead of allowing souls to move on,
we took those souls, and used them to create beings that could serve us?
그렇다면, 영혼들이 떠나도록 두는 대신, 그 영혼들을 가져와 우리를 섬길 존재를 만든다면 어떨까?
Reapers, created from human souls.
We would have to erase their memories, of course, but it would be a simple matter.
사신, 인간의 영혼으로 만들어진 존재.
물론 그들의 기억은 지워야 하겠지만, 그 정도는 간단할 것이다.
They could collect souls and send them to the afterlife, and the burden on us would lessen.
그들은 영혼을 모아 사후 세계로 보낼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의 부담은 줄어들 것이다.
They would be, for all intents and purposes, immortal. Never able to age or die. They would simply exist.
그들은 본질적으로 불멸의 존재가 될 것이다. 나이를 먹지도, 죽지도 않을 것이다. 그저 존재할 뿐.
But this is all theory, for now. More testing is required.
하지만 이것은 아직 이론에 불과하다. 더 많은 실험이 필요하다.
Testing has gone poorly. Most subjects perish in the early stages of the experiments.
실험은 순조롭지 못했다. 대부분의 실험체가 초기 단계에서 소멸했다.
Perhaps a special kind of soul is required. More testing is required.
아마도 특별한 종류의 영혼이 필요할 것이다. 더 많은 실험이 필요하다.
I hypothesize that souls exist on a spectrum of density. The strongest souls, those bathed in more of this mortal 'light' that we still do not understand, are more likely to survive the transformation process.
나는 영혼이 밀도의 스펙트럼에 따라 존재한다고 가정한다. 가장 강한 영혼들,
이 '빛'이라는 인간적인 요소에 더 많이 물든 영혼들이 변환 과정을 견딜 가능성이 더 높다.
We have found a few stronger souls, but we believe that out there, souls of pure 'light' may exist. Those souls would be the ideal candidates, with their density, but we have never encountered such a soul.
우리는 몇 개의 강한 영혼들을 발견했지만, 순수한 '빛'으로 이루어진 영혼이 존재할 가능성도 있다고 믿는다.
그러한 영혼들이라면 이 과정에 이상적인 후보가 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그런 영혼을 본 적이 없다.
They may not exist.
아마도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For now, testing continues.
당분간은 실험을 계속할 것이다.
Success.
성공했다.
Our latest test subject seems to have survived the process. Their memories are shaky, and perhaps require a stronger method of erasing, but we can deal with that. It seems our efforts have paid off, and we have created a reaper.
가장 최근의 실험체가 모든 과정을 견뎌낸 것으로 보인다.
기억은 아직 불안정하고 아마 이보다 더 강력한 기억 제거 방법이 필요할지도 모르지만, 그 문제는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
노력이 결실을 맺었고, 우리는 사신을 만들어냈다.
I believe the future will be brighter. Soon, we will have an army of unfeeling, unthinking servants to help us. The cycle of rebirth will no longer be a burden on us, nor the humans.
미래는 더 밝아질 것이라고 믿는다. 곧 우리는 감정이 없고, 생각할 수도 없는 무감각한 종들로 구성된 군단을 갖게 될 것이다.
윤회의 고리는 더 이상 우리에게는 물론, 인간들에게도 부담이 되지 않을 것이다.
명계의 존재들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인간들로 인해 생명 순환의 섭리를 유지하는 것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게 되자, 죽은 뒤에도 영혼이 소멸되지 않는다는 영혼의 특성을 이용하기에 이른다. 그들은 인간의 영혼을 연구한 끝에 저승사자 즉, 사신 死神 이라고 부르는 불멸의 존재를 새롭게 창조해냈다. 이들은 군단에 가까운 조직을 이루고 육체의 죽음을 목전에 둔 인간에게서 영혼을 거둬들이며, 영혼을 위한 안식처가 있는 Underworld 즉, 명계로 운반하는 심부름꾼 역할을 부여받게 되었다.
그러나 명계의 존재들에게 사신은 어디까지나 '편리한 수단'에 불과할 뿐. 인간의 수는 현재까지도 늘어나고 있고, 그렇게 넘쳐나는 인간 영혼으로 만들어진 사신들은 언제든 대체 가능한 소모품에 가까웠다. 그들에게 복종하지 않고 주도권을 가진 불량품은 그저 다른 것으로 갈아 끼우면 될 일이다. 기억은 지워져도 기술의 한계로 인해 감정과 생각마저 제어할 수 없었던 명계의 존재들은 자신의 피조물들에게 그들이 한낱 인간이었다는 존재의 기원을 감추고 왜곡하며, 그들을 위한 감언이설과 오직 그들에게 주어진 영원한 사명, 세계의 섭리에 대한 봉사만이 자신의 가치를 드높이고 명예를 밝히는 길이라며 궤변을 늘여놓았고, 때로는 무자비한 처벌과 보복을 가함으로써 납작 엎드리게 했다.
하지만 그들이 간과한 것이 있었으니, 본디 인간이란 것은 한없이 자유로운 존재이기 때문에 통제와 탄압 속에서 더욱이 빛난다는 사실. 한 사신과 인간이 만나 기어코 금기를 깨고 금단의 사랑에 빠진 것이다. 이 한 쌍의 연인 이전에도 금단의 사랑을 하던 이들은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모두 명계의 심판에 스러져 남은 것은 더욱 견고해진 그들의 규칙뿐. 그러나 전례 없는 인간 영혼의 특수성이 모든 것을 뒤바꿔 놓았다.
인간의 영혼은 빛이라고 부르는 생명력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빛은 생명이 살아가는 데에 소모하는 영혼의 에너지 즉, 수명인 동시에 짙을 수록 인간을 강하게 만드는 원동력이기도, 빛과 어둠이 조화를 이루는 세계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자연의 법칙이기도 했다.
명계의 존재들은 이론상으로만 존재하던 가장 순도 높은 '순수한 빛'의 영혼을 발견해낸 이후, 그 영혼을 손에 넣기 위해 많은 사신들을 투입했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죽음이 다가오면 운명이라는 강제성에 의해 죽음의 계기가 되는 물리적 현상이 작용하는 일반적인 혼과 달리, 순수한 영혼은 오로지 생명력으로만 이루어진 빛 자체임을 증명하듯 다가오는 모든 죽음을 피해 운명을 비껴낸 까닭이었다. 이로써 완료되지 못한 사신의 임무는 돌고 돌아 한 백발의 사신에게 맡겨지게 되었다. 그는 임무를 위해서라면 법의 사각지대를 이용해 규칙을 어기면서도 징계를 피해가는 요행에 익숙한 사신이었으나 일반적이지 않은 인간에게 그를 배정한 것이 실책이었다. 그는 결국 대화를 통해 인간이 스스로 영혼을 내놓도록 할 계획을 실행했고 인간과의 대화 속에서 인간성을 되찾으며, 명계가 사신들에게 씌운 감투를 자각하고는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다른 사신들의 추적을 피할 방법을 모색하던 두 사람은 이윽고 명계의 금서고에서 명계의 존재들이 그토록 감추고 싶어 했던 비밀과 마주하고 만다. 또한, 두 사람이 금기를 깬 것을 빠르게 눈치채고 일을 수습하기 위해 나타난 5012 역시도 그들이 발견한 사신의 비밀을 알게 되어 지하세계의 잘못된 구조를 바로잡기 위해 합류하였다.
그들은 이 자료가 진실인지에 대한 정확한 물증을 찾아 움직이며 비밀리에 다른 사신들 사이로 진실에 대한 소문을 퍼뜨렸다. 이는 명계의 탄압을 받던 대부분의 사신들을 움직이게 하기에 충분했으며, 이사회에 대한 반발심은 점차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이윽고 모든 반란 준비를 마친 사신들은 대열을 이루어 조직의 이사회를 찾아 진실에 대한 답을 추궁했다. 이 비밀이 사실인가. 어찌하여 우리들을 기만하였는가. 그대들에게 사신이란 존재는 그저 쓰고 버리기 편한 소모품일 뿐이었던 것인가. 생명 순환의 수호자에서 악덕한 권력자의 위치로 탈피한 이사회는 이미 나태할대로 나태해진 상태였다. 몇천년 간 지속된 탄압과 비도덕적인 행태에 대한 반성은 없었다. 자신들의 업적을 자랑스러워 하는 오만하기 짝이 없는 태도로 자신들이 만들어낸 피조물에 대한 자화자찬을 그치지 않았다. 사신들은 분노의 칼날을 내리쳤다. 인간의 희생으로써 시작된 비참한 연극이 비로소 막을 내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