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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밤 구분 없이 영원한 어둠이 드리운 지하세계에서는 생과 사의 운명을 다루는 중심지인 만큼 디스플레이 화면 구석에 표시된 작은 숫자 하나가 중요하다. 인간계와 달리 새하얗게 빛나는 달만이 그들과 공전하며 지하를 비추고 있었고 본능적인 감각이 예민한 지하인들은 시계를 확인할 수 없을 때면 주변의 밝기나 인공적인 불빛의 개수로 시간을 정확하게 직감하고는 했다.

♩♪♬-.

그의 사무실에서 밤 늦게 까지 업무를 보던 5012는 적막을 깨는 알림음 소리에 볼펜을 내려놓고 휴대폰을 집어들었다. 선배의 호출이었다. 대부분의 일을 편하고 효율적이라는 이유만으로 머릿속으로 해야 할 일을 지시하지만, 이따금 중요한 일이 생기면 이런 방식으로 그들의 업무 흔적을 남기고는 했다.



오전에 들어왔던 문서 가져오렴

바로 가겠습니다.

0429의 메세지에 답장한 뒤, 미리 준비해두었던 서류철을 들고 일어난 5012는 곧장 그녀가 있는 윗층으로 향했다. 복도가 긴 편이라도 그들의 사무실은 상당히 가까운 거리에 있었기 때문에 그는 금방 그녀의 사무실에 도착해 부탁 받은 자료를 넘겨줄 수 있었다.

"네가 준 사본 읽어 봤는데, 아무래도 걸리는 게 있지 뭐니."

"혹시 "레인"의 업무 보고서가 누락된 건 말입니까? 그거라면 저도 수상하다고 생각해서 마침 주변에 들리는 이야기들만 따로 추려보긴 했습니다."
"잘 했구나. 그래서 뭐 건져낸 거라도 있니?"


0429는 서류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5012를 향해 느리게 손을 뻗었다. 그를 칭찬하고자 함이었다. 5012는 익숙한 듯이 허리를 숙이고 그녀의 높이에 맞춰 머리를 가까이 들이밀었다. 작은 손가락이 부드러운 머릿결에 파고들어 부스스한 모양새로 헤집어 놓았다. 다른 사람이었더라면 가감 없이 불쾌감을 드러내고도 남았을 아랫것을 대하는 태도가 그녀라면 기껍다 못해 더 많은 것을 내주었으면 하는 갈망까지 불러오고는 했다. 그는 가슴 속이 간지러운 것을 느끼며 입 안의 여린 살을 조금 깨물었다.

"개인 시간에 자주 들리는 장소는 마이애미 해변 남쪽인 듯 합니다. 그는 플로리다 영혼을 담당하고 있으니까요. 그곳은 상당히 시끄럽고 인적이 많은 장소라 어떤 공작 행위를 하더라도 금방 눈치채기 힘든 편이기도 합니다. 지정 장소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범죄자가 사고를 치기엔 최적의 장소이죠."

"일을 하도 열심히 하길래 인간이랑 사랑놀음 하는 것 따위는 봐주려고 했는데. 앞에서 살랑이는 꼬리를 보니 모양새가 괘씸하기 짝이 없어서 말이지."


서류를 읽던 0429는 한 가지 대목에서 시선을 멈춘 채 눈을 가늘게 뜨고 노려보았다.

8월 17일: 업무 보고서 누락
8월 18일: 17일자 및 금일 업무 보고서 제출

그녀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전산상에 기록된 영혼의 수와 업무 보고서에 작성된 영혼의 수는 틀림없이 일치하고 혼의 정보도 일치한 것으로 보이지만, 본디 죽을 운명이 아닌 영혼이 하나 끼어 있었다. 죽어야 할 사람을 살리고, 살아야 할 사람을 죽이는 것은 천인공노할 범죄에 해당한다. 심지어 이 행위를 은폐하기 위해 주술적인 방법을 동원하기까지 했다. 멀쩡히 살아있는 사람에게 죽은 사람의 운명을 뒤집어 씌운 것이다. 그렇게 빼앗은 삶의 운명은 자신의 인간 연인에게 선물했겠지. 규칙을 어기는 것을 넘어 사랑에 눈이 멀어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저질렀으니 더이상 단순한 일탈 행위가 아니었다.


"아무래도 편법을 써서 제물을 사용한 것 같더구나? 자기 애인 하나 살리겠다고. 멍청한 것..."